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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고전을 찾아서  김상애, 김은주, 유민석, 이승준, 이지영, 정유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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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고전이란 무엇인가? 라틴어 ‘클라시쿠스(classicus)’가 지닌 어원적 의미 그대로,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변치 않는 가치를 지닌 저작으로 이해하면 그만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는 여지없이 비난받고 외면당했던 책들, 그래서 잊힌 채로 봉인되었다가 해방을 향한 여성들의 지난한 몸부림 속에서 되살아난 책들―페미니즘 고전의 운명은 예외 없이 반전의 순간 속에서 소생했고, 그것이 지닌 가치와 의미 역시 ‘지금 여기’의 현장(location)에서만 증명되어 왔다.

 

우리는 어떤 페미니즘 책이 고전의 반열에 오를 것인가 하는 초라한 관심 따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책이 페미니즘 고전으로 다시 조명되는 순간은, 우리가 현실의 벽 앞에서 간절히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순간과 겹친다. 그러므로 페미니즘 고전 읽기는 언제나 똑같이 읽어 왔던 동질적인 텍스트 읽기에서 벗어나, 시대의 요청과 얽히면서 그 텍스트들이 함축하고 있는 ‘다름’을 발견해 내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 책의 목적은 공인된 페미니즘을 전적으로 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다르게 읽기를 제안하는 데 있다.

한국 사회도 이제 결코 적지 않은 두께의 페미니즘 도서목록을 가지게 되었다. 제1물결/제2물결/제3물결로 불리는 서구의 페미니즘 운동사 속에서 나온 저작들은 물론이고, 한국 가부장제에 맞서 온 페미니즘 운동의 흐름 속에 탄생한 책들은 너끈히 하나의 서고를 채울 수 있는 양이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르면 그것은 지금보다 더 풍성한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늘 남는 문제는, 양(量)은 질(質)을 절로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빠르게 진행되어 온 페미니즘 운동과 사유의 전개 과정 속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순간순간 되돌아보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시간의 진행 속에서 더 깊어졌는지, 한국 페미니즘의 운동과 사유가 숱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완강한 가부장제적 모순을 내파할 만큼 견고한 것이 되고 있는지, 동시에 그러기 위해서도 우리의 현재적 사유가 지닌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운동을 이끌고 사유를 형성하는 언어가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는지.

 

『페미니즘 고전을 찾아서』는 한마디로 바로 이러한 ‘되돌아보기’의 필요성에 대한 응답이다. 그런데 이 되돌아봄은 ‘멈춤’ 가운데서 이루어지지 않고 현재와의 치열한 대면 속에서, ‘나아가기’ 위한 부단한 모색 속에서 이루어진다. 6명의 젊은 한국 연구자들은 그래서 감히 ‘고전’을 새로 정의하기를 서슴지 않으며, 이미 공인되어 밖으로부터 주어진 고전 목록이 아니라 자신들의 손으로 그것을 다시 작성한다. 이는 고전이란 거울 속에 오늘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오늘이란 거울에 고전을 비추려는 시도인 까닭이다. 이 시도가 지닌 한계를 느낀다면, 독자가 스스로 뛰어들어 봄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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