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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의 정신분석

 만화, 문학, 일본인  사이토 타마키 지음 / 이정민 옮김

 

표지_캐릭터의 정신분석.jpg
오늘의 일본 사회에서 ‘캐릭터(캬라)’란 무엇인가―
오타쿠 정신과 의사 사이토 타마키와 떠나는
지적인 모험!

 

슈퍼 마리오와 헬로 키티, 하츠네 미쿠, 그리고 AKB48까지. 오늘날 일본의 서브컬처는 다종다양한 캐릭터들이 맹활약을 펼치는 장이 된 지 오래이다. 뿐만 아니라 교실 속의 인간관계에서, 인터넷 게시판에서, 현대미술의 실험 속에서도 캐릭터는 온갖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들며 사람들의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캐릭터’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자신의 전문 분야를 활용해 『전투미소녀의 정신분석』 등의 저서로 서브컬처 비평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정신과 의사 사이토 타마키. 오타쿠로도 유명한 그가 작금의 일본 사회 속에서 ‘캐릭터’의 천태만상을 탐색하며 그 궁극적인 정의를 규명한다.

캐릭터가 일상화된 세상, 지금 다시 ‘캐릭터’의 의미를 묻는다

 

캐릭터라는 말이 우리의 일상에 정착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예전에 ‘캐릭터’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영화나 만화 같은 허구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떠올리곤 했다. <어벤져스>의 아이언맨이나 캡틴 아메리카,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신지나 레이, <슈퍼 마리오> 시리즈의 마리오와 루이지 등은 여전히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캐릭터’의 대표적인 이미지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우리가 생활에서 접하는 ‘캐릭터’라는 말의 용법은 여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연세 지긋한 직장 상사가 독특한 개성을 지닌 젊은 사원에게 던지는 “저 친구 참 특이한 캐릭터야”라는 감탄사를 던지는 광경을 목격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문화가 발달한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에는, 대중문화나 서브컬처뿐 아니라 이와 밀접한 관련을 지닌 인터넷 문화나 아이돌 문화, 심지어 현대미술의 영역에서도 캐릭터가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사회나 일상의 다양한 층위에서 ‘캐릭터’라는 말이 쓰이면서, 그 의미의 외연은 점점 확장되어 왔음이 분명하지만 이를 제대로 파악해 보려는 시도는 그동안 미흡했다. 우리는 ‘캐릭터’라는 말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으며, 그 쓰임새를 통해 무엇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일본의 정신과 의사 사이토 타마키가 이러한 작업에 도전한다. 의학박사이면서도 대중문화, 그 중에서도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의 서브컬처 애호가로도 잘 알려져 있는 그는 이미 『전투미소녀 정신분석』을 비롯하여, 자신의 전문 분야를 살린 독특한 관점으로 다양한 서브컬처 관련 논고나 저서를 펴내기도 했다. 그의 작업을 통해 우리에게 친숙한 서브컬처의 표면적인 현상이나 이미지의 뒤편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가 밝혀짐으로써, 우리는 콘텐츠 그 자체뿐 아니라 그것을 즐기는 스스로의 내면까지 돌아볼 수 있게 된다.

 

데즈카 오사무, 아키하바라, AKB48… 캐릭터로 다시 읽는 일본 문화

사이토 타마키는 이 책에서 ‘캐릭터’라는 말을 섣불리 정의하지 않는다. 대신 그가 택한 방법은 교육, 비평, 사상, 정치,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캐릭터’가 언급되는 사례를 구체적으로 수집하는 일이다. 예컨대 만화와 관련해서는 지금까지 ‘캐릭터’란 무엇인가를 물어 왔던 여러 비평가의 논의를 정리하면서, ‘감정’의 미디어인 만화에서 얼굴의 묘사가 어떻게 발전하며 캐릭터를 탄생시켰는지를 살펴본다. 이 과정에서 ‘만화의 신’ 데즈카 오사무 같은 이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모방한 그림체로 캐릭터의 ‘죽음’을 묘사함으로써 서구와는 달리 현실과의 불완전한 연속성을 갖는 일본 만화 특유의 표현법을 발달시키기도 했다.

학급이라는 생태계 안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역할을 연기해 내야 하는 청소년들의 스트레스나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의 심리를 고찰하는 키워드로서도 ‘캐릭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00년대 이후부터 일본 서브컬처의 중요한 미디어로 떠오른 라이트노벨을 언급할 때에는 오쓰카 에이지나 니시오 이신 등의 작가가 캐릭터를 창조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분석하고, 현대미술에 있어서는 무라카미 타카시 같은 아티스트가 시도한 캐릭터의 변형 실험을 고찰함으로써 ‘캐릭터’를 정의하기 위한 요소들을 추출하기도 한다. 음성 합성용 소프트웨어의 캐릭터인 ‘하츠네 미쿠’ 등 가상의 존재를 둘러싸고 일본의 네티즌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꼼꼼하게 되짚는 한편, 인기 아이돌 AKB48의 성공 비결마저 캐릭터 소비에서 찾아낸다. 캐릭터 ‘모에’로 인해 오타쿠의 거리로 변모한 아키하바라의 양상이나 서브컬처를 기반으로 특유의 비평과 이론을 전개해 온 사상가 아즈마 히로키의 주장들까지 검토하여, 중층화된 현실과 허구의 공간을 캐릭터가 어떻게 매개하는지를 설명하려는 사이토 타마키의 시도는 이 책을 오늘의 일본 문화를 깊이 이해하기 위한 풍성한 사례집으로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캐릭터를 둘러싼 모험, 그 끝에서 다시 인간을 만나다

사이토 타마키는 이렇듯 다양한 분야에서 캐릭터에 얽힌 현상을 살펴보고 정리한 뒤, 이를 분석하기 위해 자신의 전문 분야인 정신분석 외에도 폭넓은 교양을 바탕으로 기호학과 문화인류학, 문학사나 미술사 등의 담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캐릭터와 그들이 활약하는 현실과 허구의 장소들을 둘러봄으로써 사이토는 마침내 캐릭터의 궁극적인 정의라고 할 만한 하나의 명제를 발견한다. 그렇다면 그가 발견한 명제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여기에서 논의는 비로소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다. 저자는 이 책에서 모색한 캐릭터의 조건들을 바탕으로, ‘캐릭터’가 존재한다면 논리적인 필연으로 그에 선행하여 ‘인간’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인간’을 확률론적인 존재 혹은 다중적인 세계에서 ‘동물화’된 캐릭터로 전제하는 인식에 제동을 걸고, 성숙의 가능성을 지닌 고유한 존재로 바라보는 ‘인간관’을 회복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캐릭터’에 대한 그의 고찰은 의의를 갖는 것이다. 캐릭터의 긴 터널을 통과하여 다시 인간과 마주보기 위한 흥미진진한 지적 탐구와 모색의 여정이 지금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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