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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

아우구스티누스, 맑스, 벤야민. 역사철학과 세속화에 관한 성찰     
한상원​(지은이)

 

역사의 시간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천박한 낙관주의와 공허한 허무주의를 넘어,

미래의 구원이라는 약속으로 과거를 정당화하고 망각하려는 시도들에 맞서, 망각에 저항하고

과거를 기억함으로써 미래로 ‘도약’하려는

‘몫 없는 자들’의 서사를 재구성하려는 역사철학의 기능성은 어디에서부터 찾아질 수 있는가.

과거가 불우했다고 지금 과거를 원망한다면 불우했던 과거는

영원히 너의 영역의 사생아가 되는 것이 아니냐?

―전태일의 1969년 12월 31일 일기에서

 

 

자신의 과거를 강압과 궁핍에서 태어난 산물로 고찰할 줄 아는 자만이,

현재의 순간에 과거를 자신을 위한 최고의 가치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할 것이다.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에피소드 하나: 공산주의냐, 코뮤니즘이냐.

한 외국 정치철학자의 글에 나오는 communism이란 단어 번역을 둘러싸고 언쟁이 벌어진다. 어떤 사람이 꽤 단호한 표정으로 쿄뮨주의라고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유는 좀 궁색하다. 사람들이 공산주의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이란다. 코뮨주의라 부르면 ‘불우했던’ 과거가 덮어지나. 어떤 역사관이 혁명을 기대한 인민을 배신했는지를 묻는 노력은 피한 채.

 

#에피소드 둘: 성공한 항쟁인가, 배신당한 항쟁인가

어느 막걸리집에 앉은 ‘386 꼰대’로 보이는 남자들이 목청을 높여 떠들고 있다. 영화 <1987>이 미처 이야기하지 않은 자신들의 무용담이다. 그(그녀)들이 있어 오늘의 역사가 나아진 것은 맞다. 정작 궁금해지는 것은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자신들을 거리로 내몰았던 ‘강압과 궁핍’에 이야기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던 한국 자본주의체제가 가져온 강압과 궁핍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시대의 청년들에게 체제를 넘어서는 ‘어떤 민주주의’, 즉 혁명을 꿈꾸게 했다(적어도 그 시대의 자료들에는 그렇게 적혀 있다). 강압과 궁핍에서 태어난 그 꿈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오늘 우리가 목격하는 ‘민주주의’는 단지 숭고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10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 맑스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을 쓰고 있다. 1848년 2월 혁명의 결과로 성립한 프랑스 의회 공화정이 왜 4년도 안 되는 짧은 시기 동안 루이 보나파르트라는 기괴하고 평범한 인물의 정치쿠데타에 의해 독재체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그 책에서 분석한다. 청년 시절 역사는 ‘합법칙적으로’ 시간에 따라 진보할 것이라 믿었던 그는 역사의 반동을 목격하면서, “역사는 되풀이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소극으로”라고 쓴다.

맑스 사후 사회주의혁명이 카우츠키 일파의 득세로 사회민주주의로 체제 내화되는 동안 히틀러가 등장하고, 스탈린의 소련이 나치의 독일과 불가침조약(1939년의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이 준 충격과 파국으로 치닫는 현실을 예감하면서 수용소에서 풀려난 벤야민이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를 쓰기 시작한다. 유고로 남겨진 이 글은 사후 출간되고서도 주목받지 못했는데, 벤야민 역시 자신의 글이 ‘엄청난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예감을 한 바 있다.

그 후로도 지금까지, 그 ‘오해’는 지속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른바 ‘정통 맑스주의자’들은 벤야민을 좋아하지 않는다. 맑스나 엥겔스가 수행한 종교 비판을 되돌려 종교적 신비주의로 후퇴시키거나 헷갈리게 만들었다는 것이 이유다. 한국에서는 사정이 어떨까. 벤야민은 한국에서도 주로 ‘문화적’으로, 다른 말로 하면 ‘탈정치적’으로 읽혀 왔다. 어쩌면 이것이 맑스주의를 고루한 것으로, 현실에서 어떤 정치적 역능을 지니지 못한 것으로 만든 것과 혹시는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아우구스티누스, 맑스, 벤야민. 역사철학과 세속화에 관한 성찰』은 맑스주의 역사철학 안에 쌓여 있는 그러한 고답과 정체를 돌파하려는 한 젊은 맑스주의 정치철학자의 야심찬 기획으로 쓰인 역작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맑스주의로부터의 일탈이나 후퇴가 아니라 오히려 후기 맑스가 수행하고자 했던 물신주의 비판의 단초들을 벤야민의 사유와 연결시킴으로써 더 급진적으로 갱신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읽힌다. 그는 이것을 서구 역사철학의 전체를 대상으로 수행해냄으로써 사유의 폭과 깊이를 동시에 얻어내고 있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에 이르기까지 서구 역사철학은 두 개의 상이한 역사관 사이의 대립구도 속에서 전개된다. 하나는 유대-기독교 메시아주의 전통의 구원론적-종말론적 역사관이며, 다른 하나는 역사적 유물론이라는 해방서사로서의 역사관이다. 책은 먼저 서구 기독교 역사신학의 사유가 역사철학에서 이루고 있는 이중적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 이중성이란 이 사유가 억압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구원이라는 과제를 제시하지만, 동시에 이 과제는 오로지 역사의 종말 또는 최종목적의 실현이라는 미래의 시점으로 이월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 이중성과 그것이 이루는 공백은 서구 역사철학의 전개과정에서 핵심적 요소를 형성한다.

서구 역사철학을 관통하는 시간관의 모체인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독교 종말론은 직선적 시간을 상정하여 역사를 목적을 실현해나가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시간관은 근대 진보사관에서도 수용되는데, 한편으로 근대적 역사 이해는 기독교 종말론 역사관을 ‘세속화’하고자 했으나, 이는 기독교 역사신학의 기본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이중성을 지닌다. 현재의 의미를 미래에 도래할 최종적인 목적의 실현에서 찾으려는 이러한 관점이 갖는 맹점은 그리하여 역사적 과정 속에서 희생되는 자들, 고통받고 억압받는 자들의 관점이 소실된다는 데에 있다.

이에 비해 맑스와 엥겔스가 전개한 역사적 유물론은 이러한 목적론적, 변신론적 역사관에 대해 정당한 항의를 제기한다. 즉 역사를 목적의 실현과정이 아니라, 억압받는 집단의 해방의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 해방과정의 필연성을 법칙적으로 체계화하고자 했던 이들의 시도들 속에는 다시금 진보사관의 요소들과 뒤엉켜 있는 기독교 종말론의 특정한 구조들이 발견된다. 이러한 난점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책은 근대 진보사관이 기독교 종말론을, 다시 역사적 유물론이 근대 진보사관을 세속화했던 방식과 그 각각의 문제점을 추적한다. 진정한 세속화는 유대-기독교 메시아주의에서 강조된 억압받는 사람들의 ‘구원’을 다른 방식으로, 즉 역사적 고통의 ‘기억’을 통해 반복되는 파국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성찰로 연결하려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의 독특한 역사적 사유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적극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저자의 지적처럼, ‘세속화’라는 주제를 정치철학의 논의과정에서 핵심적인 것으로 만든 것은 조르조 아감벤의 공로이다. 하지만 저자는 아감벤 등 벤야민의 계승자들이 지닌 한계를 염두에 두면서 현대 정치신학자들이 놓치고 있는 맑스의 상품물신주의 분석―즉 종교적 체제로서 형이상학적-신학적 기반 위에 서 있는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에 대한 비판과 벤야민의 핵심적인 글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을 연결시키는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는 ‘맑스와 세속화’라는, 아직 (한국) 학계에서 진지하게 던져지지 않았던 주제에 대한 시초적인 작업이기도 하다, 실상 벤야민이 ‘세속화’라는 주제를 도입한 것은 자본주의라는 ‘종교적’ 체제를 비판하려는 관심에서였다. 보편화된 오이코스의 체제에서 신성불가침한 ‘사유재산’의 영역에 대한 유사-종교적 믿음이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극단적인 형태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신자유주의인 것이다. 속류 진화론적, 실증주의적 진보사관을 벗어나 맑스주의의 갱신을 통해 물신주의 비판을 통한 급진적 세속화의 과제가 갈수록 긴요해지는 현실이다. 이 급진적 세속화의 목적은 물론 하나이다. 고통받고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구원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즉 역사적 고통의 ‘기억’을 통해 반복되는 파국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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