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환자와의 대화-오이디푸스를 넘어서 

고바야시 요시키 ​(지은이)  I  이정민 (옮긴이)

정신분석은 지식savoir이 아니라 실천pratique이다.

 

인간에 관하여 사유하는 방식 자체에 문제를 제기했을 뿐만 아니라,그러한 문제제기의 언어적 형식까지도 위협하는 극단적인 인문학 실천의 사례를 남기고 떠난 자크 라캉.

정신분석의 혁명을 이끈 저 유명한 ‘세미나’와 더불어,

육체가 소진되는 순간까지 임상 현장을 떠나지 않았던 라캉,

주류 정신분석학계로부터 백안시되고 파문당하기를 거듭했음에도

자신이 독자적으로 창안한 ‘단시간 세션(환자와의 짧고 가변적인 상담)’을 지속했던,그의 고집스런 실천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소문으로만 전해지던 라캉의 정신분석 임상 실천의 현장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정신과 의사나 임상심리사는 환자가 하는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만, 정신분석가는 환자가 말하지 않은 것에 관심을 갖는다.” 『라캉, 환자와의 대화』를 시작하는 첫 구절은 프로이트-라캉주의 정신분석학의 다른 출발 지점을 요약하는 말이다. 자아심리학과 발달심리학, 인지행동요법에서는 정신과 진찰을 받는 환자의 자아가 약하기 때문에 이를 강화하여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이른바 보통의 수준까지 성장시키는 것을 치료라 한다. 이에 비해, 라캉주의 정신분석에서는 이와는 반대로 환자의 자아=자기 이미지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 자아에 의해 스스로가 소외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1950-1960년대, 구조주의적 정신분석가 시대의 라캉은 ‘프로이트로의 귀환’이라는 테제를 내걸고 정신의학이나 자아심리학이 아닌, 프로이트라는 천재에 의해 창안되었던 정신분석 실천의 원점으로 되돌아갈 필요성을 일관되게 주장하였다. 그중에서 라캉이 특히 강조한 것은 두 가지였다. 먼저, 첫 번째는 환자가 하는 말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조작적 진단 DSM(정신장애의 진단 · 통계 매뉴얼)으로 상징되는 생물학적 정신의학에서는 행동에서부터 환자의 병태를 파악하여 인격장애, 발달장애 등 ‘□□장애’라는 진단명을 붙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행동주의 심리학에는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는 가장 큰 요소인 언어가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정신과 환자와 동물이 결국 동렬로 취급받게 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하물며 환자의 병력이나 그가 하는 말이 아니라 동물 일반의 뇌에 집중함으로써 환자 개개인의 개별성이라는 개념은 완전히 배제된다.

이에 반해 라캉주의 정신분석은 인간의 뇌 자체가 아니라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말, 성량, 억양 등을 실마리로 하여 각각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요컨대 라캉의 이론은 타자를 배제한 채 자폐증적으로 성립된 것이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그는 환자와의 사이에서 언어를 매개로 한 전이轉移관계를 축으로 삼아 정신분석의 언설을 구축해 가려 했다.

앞서 말한 테제의 두 번째 의도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거세의 개념을 정신분석 이론의 요점으로 재인식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라캉에 따르면, 프로이트 이론에서의 오이디푸스와 거세의 개념에서 중요한 것은 어머니와 아이의 근친상간적 이자二者 관계, 즉 전前 오이디푸스 관계로부터 어머니의 욕망에 종속되어 있는 아이를 해방시키고, 타자가 이해 가능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적 주체로 생성시킴으로써 이성애를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현실감을 부여하는 팔루스phallus 기능을 전수해 주는 아버지의 기능이다. 포스트모던, 즉 서양 사회에서 아버지라는 것의 권위가 결정적으로 실추되었던 1970년대에 라캉은 아버지의 기능의 중요성을 이어 나가면서 기존의 오이디푸스 이론을 대신해 새롭게 보로메우스 이론Borromean theory을 창안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거세 개념에 대해 여전히 거부반응(거세의 부인否認이라는 도착적 반응이라 생각된다)을 일으키는 유럽과 미국은 물론이고 모자母子 관계가 보다 농밀하다고 간주되는 아시아 사회에서 라캉주의 정신분석의 이론과 실천은 이론적으로도 나아가 실천적으로도 유의미성이 있는 것일까. 『라캉, 환자와의 대화』의 편저자 고바야시 요시키의 분투는 라캉이 남긴 유일한 임상기록의 해설을 통해 그것을 입증하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다.

 

이 책은 라캉이 1976년 2월에 파리 생탄 병원의 ‘병자 제시’(病者提示; présentation de malades)에서 대면한 제라르라는 26세의 남성 환자의 진찰기록과 그 해설을 축으로 전개된다. 병자 제시란 샤르코Jean Martin Charcot 이래 프랑스 정신의학계의 전통으로, 사전 등록한 참가자(반드시 임상가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를 앞에 두고 정신과 의사가 행하는 공개진찰을 가리킨다. 1950년대부터 1981년, 그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열었던 저 유명한 세미나와 함께 병행해 왔던 것이 파리 생탄 병원에서의 병자 제시였으며, 그는 한 번도 임상 실천의 현장을 떠난 적이 없었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 이론의 대상으로서 주로 신경증 환자를 다룬 것에 비해, 라캉은 정신병 또한 사정권에 두고 이 현장에서 실천을 행하여 이론을 구축해 나갔던 것이다.

라캉의 정신분석 실천은 철저히 발화에 의거한 것이다. 카비네의 각각의 세션에서 분석주체(환자)에게 욕망 · 환상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분석가의 목소리, 또는 시선 앞에서 말하는 사이에 생기는 전이관계를 축으로 정신분석이 진행되지만, 분석가는 전혀 기록을 하지 않는다. 그는 정신분석 이론을 전달할 때도 문자에 관해서는 수식과 마템matheme(수학소), 도식만을 정리하였고, 기본적으로는 그의 신체, 목소리, 시선의 현전現前, 청중의 그에 대한 전이관계를 축으로 하여 오로지 발화만으로 30년간 세미나를 진행해 왔다. 이는 논문과 사례 기록을 뚜렷하게 남긴 프로이트와는 대조적인 것인데, 이 스타일은 라캉의 후계자인 자크 알랭 밀레에 의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도 환자 제라르와의 대화기록은 현존하는 유일한 라캉의 임상사례 기록으로서 그만큼 중요한 텍스트라는 것을 의미한다.

환자가 하는 말에 주목하고 그 인생을 다루는 일에 타협이 없는 인생을 산 라캉. 그 라캉에게 있어 ‘주체의 위기’를 겪고 있는 한 청년의 인생은 어떻게 비쳤던 것인가. 환자와 분석주체가 말하는 언어에 주목하여, 언어에 종속된 무의식과 증상을 다룸으로써 각자의 고유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게 하는 정신분석 실천. 프로이트로부터 시작되어 라캉에 이르러 세련되기까지에 이른 그것은 오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파고 속에서 극심한 사회변동을 겪으며 삶의 위기를 실감하고 있는 오늘 한국의 현실에서도 유의미하며 실천 가능한 것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수치를 모르는 문명’으로 변화해 가는 과정에서, 상실과 상처, 죽음과 애도와 죽음 충동, 부인否認과 망각, 갈등과 격분에 휩싸인 한국 사회에서 라캉주의 정신분석 실천의 가능성을 찾는 것, 이 책 『라캉, 환자와의 대화』가 지닌 의미는 바로 거기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은 라캉과 환자 제라르의 대화를 일종의 희곡으로 상정해 놓고 구성한 것이다. 정신분석 장면에서는 분석주체가 자신이 말하는 문맥에서 일시적으로 다소간 히스테리화 · 연기자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렇기 때문에 분석 세션은 일종의 연극공간으로 가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것이 서술적 장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하겠다. 편저자 고바야시 요시키의 다음과 같은 진술은 그래서 가식의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연기자는 타인과 가공의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이다. 정신분석가와 정신과 의사는 분석주체와 환자의 인생에 머리를 싸매는 것이 인생이다. 공통적인 것이 많은 양자이지만, 사실은 소설보다도 기이해서 거의 매일 임상을 쌓아온 정신분석가, 정신과 의사로서의 인생에서 나는 이 말이 사실임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