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자유의식

 헤겔과 맑스의 자유의 변증법  안드레아스 아른트 지음 / 한상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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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68혁명 세대의 대표적 지성이자 헤겔 연구의 권위자인 안드레아스 아른트의 책 『역사와 자유의식』은 제목에서부터 다분히 게오르크 루카치의 저 유명한『역사와 계급의식』을 떠오르게 한다. 이 야심 찬 제목은 루카치의 책에 대한 오마주도 패러디도 아닌 전면적 사유의 전환을 겨냥한 것이다. 루카치 이래의 오랜 헤겔-맑스주의 전통은 주지하다시피 변증법적 방법을 둘러싼 헤겔과 맑스의 비교 연구였다. 아른트의 책은 이에 대한 대담한 도전으로, 헤겔과 맑스를 결합하는 심급을 일거에 이동시킨다.

 

그것은 바로 지금까지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자유의 실현’이라는 관점이다. 다르게 말하면 그것은 “인간의 해방이 자유의 이름으로 실현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 아래 헤겔과 맑스의 사상을 전면 재구성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새로운 헤겔-맑스주의 가능성을 묻는 일이며, 이를 통해 헤겔과 맑스 모두가 역사적으로 받아 왔던 비난, 즉 개인이 아닌 전체의 관점에서 사고하며 이로 인해 전체주의나 관료 독재를 정당화했다는 시선에서 벗어나, 개인적 자유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두 사상가를 결합시키려는 과감한 시도가 될 것이다. 만일 대안적 포스트 자본주의 사회를 고민해야 한다면, 우리는 개인적 자유를 보장할 법/권리의 차원을 벗어날 도리가 없다. 책의 말미에 전 근대적 정치적 인륜성의 틀 속에서 자신의 공산주의 비전을 제시하는 알랭 바디우(Alain Badiou)를 통렬히 비판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헤겔-맑스주의 연구의 새로운 지평이 아닐 수 없다.

‘자유의 변증법’을 향하여―어떻게 인간의 해방이 자유의 이름으로 실현될 수 있을까?

 

게오르크 루카치의 기념비적 저작 『역사와 계급의식』이 세상에 나온 것은 1923년이다. 루카치는 이 책에서 정통 맑스주의의 기초를 맑스의 변증법적 ‘방법’에서 찾으며, 이를 통해 헤겔과 맑스의 변증법을 결합하는 ‘헤겔-맑스주의’의 노선을 정립하였다. 루카치의 헤겔 수용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것은 의식의 변증법이었다. 즉, 루카치의 물음은 프롤레타리아 의식이 어떻게 부르주아적 주객 이분법과 사물화와 물신주의를 뚫고 변증법적으로 새로운 총체성에 도달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는 자본주의적 축적이 난폭하게 시대를 몰아세우는 혁명의 시대에 철학적 열정이 펼친 인식의 지평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덧붙이자면 이러한 루카치의 헤겔-맑스주의는 이후 서구 맑스주의의 발전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1950년대 이래로 ‘인간주의적’ 맑스 해석이 등장하는 데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러한 루카치의 헤겔-맑스주의는 이후 알튀세르 학파에 의해 강력한 도전을 받기도 했다. 알튀세르는 루카치와 인간주의 경향의 맑스 해석을 비판하면서 탈주체, 구조, 이데올로기, 무의식, 인식론적 절단과 같은 범주들을 도입하였으며, 특히 헤겔 변증법의 표현적 총체성과는 다른 맑스의 독자적 변증법을 강조했다. 그 이래로 이 두 학파 사이의 논쟁이 헤겔과

맑스의 관계를 둘러싸고 수십 년간 지속되었다.

 

20세기 현실사회주의가 무너져 내린 지도 30년이 더 지나고 있다. 그 사이 맑스주의 철학과 사상은 말할 것도 없고 헤겔은 서가의 먼지를 뒤집어쓴 낡은 철학으로 여겨지거나 ‘역사의 끝’이란 선언으로 희화화되기도 했다. 기세가 오른 우파 이데올로그들에게만이 아니라 여전히 자본주의 극복을 이야기하는 좌파의 경우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헤겔과 맑스 모두가 역사적으로 받아 왔던 비난, 즉 개인이 아닌 전체의 관점에서 사고하며 이로 인해 전체주의나 관료 독재(혹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정당화했다는 비난에서 멀리 달아나지 못했다.

 

독일의 대표적인 68세대 지식인 중 한 사람인 안드레아스 아른트의 『역사와 자유의식』은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에서 시작된 오랜 헤겔-맑스주의의 전통에 대한 과감한 도전일 뿐 아니라 이제는 곳곳에서 균열의 조짐과 위기를 드러내는 자본주의 너머를 상상하는 데 있어 맑스와 더불어 헤겔이 오늘의 우리에게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으로 다가올 수 있는지, 그렇다면 어디에서 시작하여 무엇이 검토되어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시도로 평가할 만하다. 그 자신 역시 헤겔-맑스주의자인 아른트는 처음부터 루카치의 그것과는 상이한 관점을 선택한다. 한마디로 루카치 이래 전통적으로 헤겔-맑스주의는 변증법적 방법을 둘러싸고 헤겔과 맑스를 비교하는 관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아른트는 헤겔과 맑스를 결합하는 심급을 일거에 이동시킨다. 그에 따르면, 헤겔과 맑스는 ‘개인적 자유’의 실현이라는 관점 속에 새롭게 결합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어쩌면 맑스의 『자본론』과 비교해야 할 헤겔의 저작은 변증법적 방법을 다루는 『논리학』이 아니라, 자유의 현존재로서 법과 국가 공동체에서의 인륜성을 다룬 『법철학』이 될 것이다. 어쨌든 아른트의 이러한 독특한 헤겔-맑스주의 사유는 새로운 논쟁의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맑스 텍스트에서 청년기 저작과 성숙기 저작의 관계, 헤겔과의 관계를 둘러싼 루카치 학파와 알튀세르 학파의 대립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연구해 왔는데 반해 이를 넘어 ‘자유’의 관점에서 어떻게 헤겔과 맑스가 비교 연구 대상이 되는가에 관해서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고 했을 때 이 책은 기존의 관점을 넘어선 새로운 시각의 헤겔-맑스주의의 가능성을 논하고 있으며, 앞서 언급했던 이를 통해 헤겔과 맑스 모두가 역사적으로 받아 왔던 비난, 즉 개인이 아닌 전체의 관점에서 사고하며 이로 인해 전체주의나 관료 독재를 정당화했다는 시선에서 벗어나, 개인적 자유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두 사상가를 결합시키려는 과감한 시도를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급진적 좌파 철학자들 사이에서 이야기되는 ‘새로운 공산주의’가 보여 주는 치명적 맹점과도 관련하여 주목될 가치가 있다.

 

헤겔-맑스주의자로서의 아른트에 따르면 ‘순수 혁명적 학설’이란 것은 맑스가 아니라, 개인들에게 완전히 투명한, 소외되지 않은 사회적 세계라는 낭만주의에 의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알랭 바디우(Alain Badiou)가 자신의 공산주의 비전을 플라톤의『국가(Politeia)』를 다루는 가운데, 즉 소외론적 낭만주의를 투사하기에 적합한 공간인 전 근대적 정치적 인륜성의 틀 속에서 제시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도래할 사회에 대한 상상은, 이러한 사회가 자기의식적 개인과 마찬가지로 주조되어야 한다는 가정에 입각하여 규정된다. 이러한 추상은 무죄가 아니다. 반면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유’라는 말처럼 오염된 것은 없다 하더라도, 자유는 유죄가 아니다. 스탈린 시대의 공포를 떠올릴 필요도 없이, 대안적 포스트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논의는 개인적 자유를 보장할 법/권리의 차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자유의 왕국’에 대한 맑스의 사유로, 세계사를 자유의식에서의 진보로 파악하고 가장 추상적으로 보이는 규정들에 이르기까지 자유의 철학을 관철하려 했던 헤겔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헤겔을 보편자를 위해 개별자를 희생시킨 철학자로 간주하는 것이야말로 그의 철학에 대한 결정적 오해이다). 헤겔에게서도 맑스에게서도 역사는 자유의 역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