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이는 시간[들]

제4물결 페미니즘과 한국의 동시대 페미니즘    김은주/이소윤/김상애/김미현/김보영/허주영/강은교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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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한국 사회를 보노라면, 소위 안티-페미니즘이 득세한 것처럼 보인다. 2016년 ‘강남역 사건’을 계기로 분출하던 페미니즘 운동이 주춤한 사이, 페미니즘을 비판하고 공격하는 목소리들이 기세등등하다(특히 선거를 거치며 ‘이대남’의 위력이 과시된 이후). 가부장제의 모순과 불평등, 만연한 강간 문화와 여성 혐오에 대한 성찰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페미니즘이 ‘남혐’과 역차별을 가져왔다는 다분히 과장된 이야기들로 소란하다. 과연 한국 사회는 페미니즘의 과잉을 걱정할 만큼 젠더 불평등이 이미 해소되었거나 역전된 것으로 보아도 좋은 것일까?

 

프루던스 체임벌린의 『제4물결 페미니즘: 정동적 시간성』의 번역과 더불어 출간되는 책 『출렁이는 시간[들]: 제4물결 페미니즘과 한국의 동시대 페미니즘』을 통해 우리는 지난 몇 해 동안 한국 사회에서 활기차게 전개되어온 페미니즘의 물결이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세계사적 사건 내지 운동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제4물결이란 번호 매김은 페미니즘이 자기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긴 시간 진화해온 평등한 미래에 대한 설계도를 품고 있음을 의미하지만, 이 새로운 페미니즘의 앞날이 마냥 낙관적인 것도 확정적인 것도 아니다. 새로운 물결을 추동하고 있는 정동(affects)에는 긍정적인 것만이 아니라 부정적인 것도 있으며, 사건적 계기와 사회 변화의 조건에 따라 솟구치기도 하지만 파고가 잦아들 수도 있다. 또한 지금 목격하고 있듯이, 페미니즘적 요구를 신속히 전달하고 확산하는 온라인 기술은 역설적으로 반격(backlash)의 즉시성을 불러오기도 한다. 이러한 복잡성과 모순, 불확실성과 시끌벅적함을 페미니즘은 자신의 역량으로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과연 한국 사회의 낡은 구조를 해체하고 재편하는 역동을 이어갈 수 있을까? 여기 우리 앞에 놓인 일곱 편의 에세이들은 이 물음에 답하기는커녕 때로는 ‘나는 페미니스트인가?’하는 의심도 숨기지 않는다. 저자들은 한국의 동시대 페미니즘을 대표(내지 대변)하려는 허영을 부리지 않으며 단지 자신을 둘러싼 페미니즘의 시간성을 파악하고자 하는 인식의 안간힘을 펼쳐 보일 뿐이다. 그런데, 왜일까? 시대의 멀미를 견디며 동시대성의 핵심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 안간힘 사이에 희망이 깃들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은.

제4물결 페미니즘과 더불어, 한국의 동시대 페미니즘을 말하다

 

하나. 반격의 소란과 역류 속에서

 

“페미니즘이 ‘젠더 갈등’과 ‘남성 혐오’를 조장한다.”―인터넷 공간을 넘어 이제는 온갖 미디어 매체에 수시로 등장하고, 청원을 포함한 소란스런 캠페인을 벌이는 반페미니즘적 목소리와 주장을 점잖게 요약하면 앞의 문장이 될 것이다. 바야흐로 반격의 시대이다. 작금의 한국 사회를 보노라면, 소위 안티-페미니즘이 득세한 것처럼 보인다. 특히 지난 4월의 보궐선거를 거치며 ‘이대남’의 위력이 과시된 이후 페미니즘을 비난하는 목소리들로 소란스럽다. 페미니즘에 대한 노골적인 조롱과 공격에서부터, 과거에는 여성 혐오나 차별이 문제였지만 이제는 남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문제라는 포스트페미니즘적 말투까지, 여기에 페미니즘은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편협해서는 안 된다는 걱정과 충고까지. 과연 한국 사회는 페미니즘의 과잉과 남성 인권을 걱정할 만큼 젠더 불평등이 이미 해소되었거나 역전된 것으로 보아도 좋은 것일까?

 

일찍이 수전 팔루디는 『백래쉬(Backlash)』(1991)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이러한 역류와 과장된 소란을 이야기한 바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페미니즘이나 이에 대한 공격 모두 인터넷 기술의 진화에 따라 운동과 반격이 동시적으로 진행된다는 사실 정도일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제 페미니즘의 역사는 제법 두터운 시간대를 형성하지만, 그나마 긴 모색과 고투를 진행하다가 커다란 물결로 등장한 것은 이른바 ‘페미니즘 리부트’의 과정을 거치다가 2016년 ‘강남역 사건’의 충격을 겪으면서였다. 가부장제의 모순과 불평등, 오랜 강간 문화와 여성 혐오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들이 이제 막 터져 나오기 시작하고 페미니즘의 세계적 물결과 만나는 시점에 따라붙은 이 소란스런 반격의 목소리들은 한국의 동시대 페미니즘에 어떤 사유의 과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일까. 페미니즘을 침묵시키고 그나마의 성취와 에너지마저도 탈취하려는 시도 앞에서 어떤 숙고와 모색이 필요한 것일까.

 

둘. 우리는 지금 어떤 시간대를 통과하고 있는가

 

프루던스 체임벌린의 『제4물결 페미니즘: 정동적 시간성』의 번역과 더불어 출간되는 이 책 『출렁이는 시간[들]: 제4물결 페미니즘과 한국의 동시대 페미니즘』은 시공간을 가로질러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페미니즘의 새로운 물결의 파고들이 서로를 어떻게 반영하고 연결될 수 있는지를 탐문해 보기 위해 기획된 책이지만, 무엇보다 페미니스트로 자신들을 호명하며 페미니즘의 물결과 함께하려 했던 사람들이 동시대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을 어디서, 어떻게, 어디로라는 질문을 통과해 사유해 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다시 말해서, 이 책은 “우리는 페미니즘 제4물결이다”를 선언하기 위한 데 목적을 두고 기획한 책이 아니다. 저자들은 ‘온라인 페미니즘’으로도 불리는 페미니즘의 새로운 물결이 제4물결로 불릴 수 있으며, 한국 역시 이 흐름에 있다는 사실을 의심치 않는다. 인터넷 기술에 힘입어 관계를 변화시키는 힘을 직접 실감하고, 그 관계의 공간에서 활력 있는 정동(effects)를 느꼈던 경험을 신뢰하지만, 동시에 외부의 편견과 공격만이 아니라 페미니즘 내부의 분열과 갈등으로부터 오는 날카로운 상처도 안고 있는 세대로서, 이제는 페미니즘의 물결이 안고 있는 복잡함, 불협화음과 더불어 반격의 소란이 뒤엉킨 한국의 시공간에서 오늘의 페미니즘의 시간성의 핵심을 포착해 보려는 노력의 시작이다. 새로운 페미니즘의 물결을 분석하기 위해 벼려온 사유를 투여하고, 각자가 통과해온 시간과 경험들을 곱씹고 기록함으로써 동시대 페미니즘을 이해하기 위한 재료를 제출하여 정동적 충전의 시간을 만들려는 시도인 것이다.

 

책은 일곱 개의 비평-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철학자 김은주의 첫 번째 글은, 한국에서 2016년 강남역 사건을 기점으로 역동적으로 진행되어온 페미니즘의 경로를 되짚으며,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확산되어 연결-행동으로 이어지며 정동의 급등을 보여 주는 페미니즘 운동이 비단 한국만의 상황이 아니라 세계적인 차원의 글로컬 운동임을 입증한다. 이러한 온라인 페미니즘을 소셜 미디어의 측면에서 분석하여 통치성에 저항하는 새로운 주체화로서 설명하는 이 글은 동시대 페미니즘이 지닌 역동성을 접근하는 최초의 본격적인 비평으로서 의미와 분석의 힘을 보여 준다. 두 번째 글(이소윤)과 세 번째 글(김상애)은 소위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를 통과하며 페미니스트로 스스로를 정체화했던 세대로서 자신들이 거쳐 온 시간의 결을 더듬고 기록한 실존적 에세이이다. 이소윤은 이 글에서 페미니스트로 겪어야 했던 분노의 시간들을 세 시기로 구분하는데, 여성으로서 자신이 원하지도 선택하지도 않은 이름으로 불리는 데 대한 모욕감이 어떻게 자신을 강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기억에서부터, 자신을 포함한 동시대 페미니스트들에 건 희망과 기대가 좌절된 순간에 곱씹어야 했던 자기 책망과 죄책감, 그리고 이러한 상처와 분노를 넘어서기 위해 고민하고 분투하는 여정을 적어 나간다. 김상애의 글은 ‘나는 페미니스트인가?’라는 물음으로 환기된 페미니스트 모먼트를 되짚는 과정에서 페미니즘과 상관없어 보이는 소녀 시절의 기억까지를 소환하는 자전 서사를 그려 낸다.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을 만나게 하면서 페미니스트 주체화의 의미를 되묻고 불확실한 미래의 시간에 다가가는 용기를 생성하려 한다. 페미니스트 주체화는 나르시시즘적 자기 선언이 아니라 페미니스트-되기(becoming)라는 ‘과정’이며, 이것은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와 불확실한 미래가 포함된 다시간적인 과정이라는 사실을 자신의 경험 서사를 통해 이야기한다. 이들은 기꺼이 동시대 페미니즘의 물결에 몸담았지만, 젊은 페미니스트들을 예민하게 하고 소진시키는 피로와 상처는 가부장제 사회와 벌이는 전투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내부에 존재하는 까다로운 관계들에 의해서도 발생하는 것이었다. 개인적 분노와 상처와 회의에 갇히지 않고, 시대의 멀미를 견디며 ‘가라앉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이 에세이들은 동시대의 고백과 증언으로서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언뜻 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과 거리가 있는 것 같은 김보영의 다섯 번째 글은, 하루아침에 돌봄 노동을 떠맡게 된 젊은 페미니스트의 ‘애도 일기’와도 같은 에세이다. 관습적으로 여성의 몫이자 책임으로 생각되어 왔고, 가뜩이나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돌봄 위기’ 상황에서 불가항력적으로 자신의 ‘남혐’의 뿌리가 된 아버지를 돌보고 죽음의 과정을 지켜봐야 했던 이 기록은 이어지는 페미니즘 문학을 다루는 두 개의 글과도 이어지는 가교의 역할을 한다. 이 시대의 페미니즘은 여성의 삶을 짓누르는 질곡이 주는 무게와 히스테리를 감당하는 ‘82년생 김지영’을 비롯한 이 시대 여성의 일상 위에 놓인 것이고, 그것은 편의점 광고 안에 있는 손가락 모습 하나에도 부르르 떠는 경박함과는 다른 무엇인 것이다. 허주영의 여섯 번째 글은 온라인을 통해 분출되는 여성 서사에 대한 요청과 독해(소비) 방식이 기존의 페미니즘 문학에 접근해온 비평적 태도/관점이 불일치를 노정하는 난해한 상황을 다루는 비평으로, 그간의 페미니즘 문학에 대한 비평의 성과를 긍정하면서도 작품-독자의 상호성이 텍스트의 생산과 수용에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를 비판하면서, 남성 의미 경제 체계 밖의 비평/연구로 나아가야 길을 타진해 보는 글이다. 이 글과 더불어 강은교의 마지막 일곱 번째 글은,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해 사유하는 SF 작가들의 텍스트를 페미니즘 성취의 반영일 뿐 아니라 페미니즘 상상력과 논의에의 기여로서 적극적으로 읽기를 권유하는 비평이다. SF가 그리는 세계는 그것이 단 한 번도 도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언제나 잠재적인 위상을 가지며, 미래를 향해 있다. 이러한 잠재성/미래성은 차별이 온존하던 과거를 의식하면서 차별이 사라진 더 나은 미래를 열망하는 페미니즘의 동시대적 시간성과 교차하면서 페미니즘 대안 세계를 생성하면서 현재의 현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미래의 결정에 개입할 동기를 부여하는 점에서 정치적인 힘을 갖는다.

 

 

상승과 하강 사이에서, ‘동시대적 주체’로 남기 위하여

 

사라 아메드의 말처럼, 페미니스트들은 “미래가 그저 과거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욕망”을 품고 있는 동시에 “변혁의 정치로서 페미니즘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세상”의 가능성을 품는다. 이 말이 주는 긴장에서 벗어나지 않고 지탱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은 ‘동시대’라는 시간성을 응시하는 사유의 집중이다. 동시대적 주체는 그 시대의 규범적 시간성과 일치하지도, 그 시대의 규범이 요구하는 것에 순응하지 못하는 이들이다. 이렇게 선형적 시간성과 기꺼이 어긋나고 ‘불편한 존재들’로 남음으로써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이 통과하는 시간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세계를 변화시켜 갈 동시대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불확실성과 모호함, 상처와 갈등, 진보와 퇴보를 받아들이고 헤쳐 갈 용기를 필요로 한다. 페미니즘의 앞날이 마냥 낙관적인 것도 확정적인 것도 아니다. 그간 페미니즘적 요구를 신속히 전달하고 확산하는 온라인 기술은 역설적으로 반격의 즉시성을 불러왔다. 페미니즘에 대해 아는 척하는 것과 페미니즘을 기각하는 것이 결합된 기만과 아이러니가 지금 펼쳐지는 현실이다. 이러한 복잡성과 모순, 불확실성과 시끌벅적함을 페미니즘은 자신의 역량으로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과연 한국 사회의 낡은 구조를 해체하고 재편하는 역동을 이어갈 수 있을까? 아무도 모른다. 여기 우리 앞에 놓인 일곱 편의 에세이들은 이 물음에 답하기는커녕 때로는 ‘나는 페미니스트인가?’하는 의심도 숨기지 않는다. 저자들은 한국의 동시대 페미니즘을 대표(내지 대변)하려는 허영을 부리지 않으며 단지 자신을 둘러싼 페미니즘의 시간성을 파악하고자 하는 인식의 안간힘을 펼쳐 보일 뿐이다. 그런데, 왜일까? 시대의 멀미를 견디며 동시대성의 핵심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 안간힘 사이에 희망이 깃들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