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우치 요시미: 어느 방법의 전기  츠루미 슌스케 지음 / 윤여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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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일본의 비판적 지식인 가운데서도 다케우치 요시미竹内好는 특유의 사유와 태도를 견지하면서 치열한 글쓰기를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위치를 지녔던 지식인이다. 전쟁 시기의 일본 민족(국가)의 오류를 자신의 책임으로 짊어지고서 전중을 낱낱이 되묻고 그것을 단서로 삼아 전후의 사고를 열고자 했던 그의 사상적 면모는 그동안 한국어로 번역된 몇 권의 책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그런 다케우치 요시미의 삶과 사상을 전기적 방법으로 엮은 책이 이번에 우리에게 전해졌다. 책을 쓴 이는 츠루미 슌스케. 철학자, 비평가, 운동가로 그 또한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사상가에 의해 쓰인 사상가 비평이라는 점에서 일반적 전기의 관행을 넘어서리라는 관심을 갖게 한다.

 

두껍지 않은 분량의 ‘전기’ 안에서 동아시아의 비판적 사상의 형성 구도와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루쉰 연구자로 알려진 다케우치 요시미의 전중과 전후의 독특한 사상적 궤적을 그와는 다른 위치에서 동시대를 살아 낸 츠루미 슌스케가 조명하고, 이를 현대 중국의 대표적인 비판적 지식인 쑨거가 그 의미를 따진다. 그리고 이를 한국의 동아시아 사상 연구자 윤여일이 다케우치 요시미-츠루미 슌스케-쑨거를 다시 한국어의 공간 안에서 ‘사상의 번역’을 시도한다. 사상과 사상을 잇는 이 긴장을 견딜 수 있을 때, 사상의 아사 상태를 벗어날 출구가 비로소 보이지 않겠는가.

한 권의 ‘전기(『다케우치 요시미―어느 방법의 전기竹内好―ある方法の傳記』)’가 담은 동아시아 사상 잇기의 삼중三重 구조

 

하나. 다케우치 요시미(1910-1977)라는 사상가의 전모를 루쉰 연구자로 국한할 수 없지만, 그는 『루쉰잡기魯迅雜記』(2020년 초 한국어로 출간될 예정)를 비롯 그의 루쉰 연구는 특별하다. 많은 일본인들이 그를 통해 루쉰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루쉰 연구가 다른 것들과 차별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아니 그에게 있어서 루쉰이라는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다케우치 요시미의 중국 문학 연구가 처음부터 루쉰을 향했던 것은 아니다(따지고 보면 그가 중국 문학을 택해 대학에 진학한 것도 실은 대학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그의 니힐리즘적 태도에서 비롯된 우연이었다). 난폭한 중국인이 철로를 폭파해 일본 열차를 가로막았다는 거꾸로 된 이유로 일본이 군사 행동을 일으키는 계기가 된 1931년의 만주사변. 도쿄 대학 문학부의 지나 철학·지나 문학과 1학년 학생이었던 다케우치 요시미는 그렇게 시작된 격변의 시대에 아시아(중국)이라는 ‘타자’ 속으로 들어선다.

 

명작보다는 무명작가의 글을 찾아 읽던 어린 시절부터, 니체와 슈트리너를 읽으며 러시아 문학에서도 톨스토이의 도학자 면모를 경원시하고 투르게네프를 좋아하던 청년 니힐리스트는 이미 그 시절부터 문학을 하나의 ‘태도’라고 믿었다. 그는 자신의 나라 일본과 중국 사이의 전쟁에 처음부터 관심을 가졌고, 최소한 약한 자를 괴롭히는 건 싫다는 감각을 줄곧 간직했다. 그러한 감각이 중국인 유학생을 비하하는 ‘지나’라는 말을 거슬러 ‘중국문학연구회’를 만들게 했을 것임은 물론이다.

 

자기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나름의 중국의 상像을 만들지만, 그는 자신이 만든 상 속에 안주하는 일본 낭만파와 연을 끊었다. 하지만, 그는 1942년 1월 중국문학연구회가 내는 잡지에 일본의 대동아전쟁을 지지하는 「대동아전쟁과 우리의 결의」라는 선언을 실음으로써 국가와 자아가 뒤얽힌 선악의 비식별 지대로 자진해서 들어선다(다이쇼 이래 일본국의 행보가 줄곧 혐오스러웠는

데, 마침내 일본이 미국, 영국, 네덜란드에 맞서겠다는 아시아주의의 자세를 확실히 표명한 것이 일거에 지지의 입장으로 돌아섰던 이유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전중의 선택이 지닌 오류와 책임에 자신을 연루시킴으로써 자신의 전후를 시작한다.

 

이런 다케우치 요시미에 의해 루쉰이 어떻게 그려지는지는 그의 『루쉰 잡기』에 맡겨 두도록 하자. 『다케우치 요시미―어느 방법의 전기』에는 1942년 상하이의 루쉰의 무덤 앞에 선 다케우치 요시미가 있다. “일본군 점령 아래서 루쉰은 죽음마저 욕보였다. 그 앞에서 아무 말 없이 머리를

숙이고 있던 다케우치 요시미의 상념은 『루쉰』을 쓰는 다케우치의 서술 안으로도 흘러들어 가지 않았을까.” 묘비에 새겨진 초상이 절반이 부서진 채 작은 무덤들 속에 방치되어 있다시피 한 루쉰의 무덤 앞의 상념. 위다푸나 궈모러를 주목했지 그들과 반대편에 있는 루쉰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마오뚠의 장편소설에 마음이 끌렸지 거리를 두었던 루쉰은 바로 주저 없이 전쟁 지지를 선택했지만, 그 선택에서 놓친 것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분열된 주체로서의 다케우치의 정신 속으로 걸어들어 온 것이다. “다케우치에게 『루쉰』은 자신이 바라보는 일본의 상황이자 그의 이상이었다. 다케우치에 따르면 루쉰의 사상은 무종교의 형태를 띤 속죄”였던 것이다.

 

츠루미 슌스케가 쓴 『다케우치 요시미―어느 방법의 전기』는 이렇게 루쉰에 이르는 다케우치의 사상적 연대기를 비평적 관점으로 섬세하고 세밀하게 엮어 낸다(전중뿐 아니라 전후 다케우치 요시미의 글 전체와 그에 관한 기록들에 대한 정밀한 독해에 기초하여). 뿐만 아니라 전중의 책임으로 분리시키는 길이 아니라 기억을 적극적으로 불러 냄으로써, 지배 체체의 바깥으로 나와 그것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머물며 몸부림치는 다케우치 요시미의 지난하고도 마르지 않는 글쓰기와 분투 속에 놓인 그의 전후 사상의 내재된 의미를 해명해 낸다.

 

둘. 그런데 한편으로 『다케우치 요시미―어느 방법의 전기』는 전중과 전후의 상황 속에서 펼쳐진 다케우치 요시미에 대한 전기적 비평인 동시에 다름 아닌 츠루미 슌스케라는 사상가의 정신적 궤적에 다름 아니다. 바로 이 점을 우리에게 밝혀 주고 있는 것이 현대 중국의 대표적인 비판적 지식인 쑨거가 쓴 해설 「선에는 응보 없으니」이다. 츠루미가 그려낸 다케우치 요시미의 ‘사상의 모습’ 안에는 바로 그 자신의 사상의 모습이 담겨 있는 것이다.

 

한국어로도 번역된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윤여일 옮김, 2007)의 저자이기도 한 쑨거는 다케우치의 삶과 사상을 추적하는 츠루미 슌스케의 시선에 담긴 변화와 숨겨진 일관성을 따라가며 그의 전기 작업에 대한 비평을 수행한다. 쑨거는, 츠루미가 착오에 대한 반성을 사상의 원동력으로 삼는 지식인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옳으냐의 여부보다는 역사를 헤치고 들어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다케우치 요시미의 삶과 사상을 읽어 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의심으로부터 출발했다. 그것은 다케우치의 사상을 그저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는다”는 것으로 읽어서는 사상의 본질적 의미와 가치가 실패를 무릅쓰는 몸부림에 놓여 있다는 것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츠루미 슌스케 역시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 속에서 자신과 다케우치 사이의 삶의 이력과 사상적 행보 사이의 차이를 숨기지 않는다. 츠루미는 스스로를 “자신을 말뚝에 묶듯이 해서 이 시대를 간신히 살았”던 자로 묘사한다. 전쟁 반대라는 정치적 관점이 분명했던 그는 어쩌면 일관되게, 특별한 오류 없이 전중과 전후를 살아냈던 지식인이자 운동가였다. 그런 그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으며, 무엇보다 다케우치의 존재를 자신의 어머니의 존재 옆으로 끌고 오게 되었을까. “시간을 거슬러 도달점으로부터 되돌아가 보면, 츠루미가 시간을 경과하는 동안 무엇을 흘려보냈는지가 보인다. 그것은 이상주의적 색채를 띠는 ‘순수한 선’이었다. 여과된 이후 형성된 것은 ‘선에는 응보 없으니’라는 버거운 현실과 직면한 ‘복합적 선’이라는 신념일 것이다. 이 선은 악의 바깥에서 악과 대결하는 것처럼 명쾌하지 않다. 악 속에서 만들어낸 선이다. 악 속에서 만들어낸 선은 결코 순수한 ‘선’ 같은 모습을 취할 수 없다. 츠루미가 강조했듯이 천황제 지배의 바깥으로 나와 천황제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길을 택하지 않고, 천황제 안에서 견딘다는 다케우치의 사상적 입장은 이 ‘선’의 전형적 사례”로서 츠루미는 다케우치의 모색을 계승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상적 ‘쩡짜’가 필요한지를 바로 이 책을 통해 보여 주었다고 비평한다. 루쉰과 다케우치 요시미, 츠루미 슌스케와 쑨거로 이어지는 사상적 긴장과 그 속에서 추구되는 사상의 근원적 의미에 대한 탐색을 지켜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셋. 이 책이 그려 내는 동아시아 사상의 모습에는 한국어의 공간이 비어 있었다. 이것을 채우는 것은 다름 아닌 책을 옮긴 동아시아 사상 연구자 윤여일의 글 「츠루미 슌스케의 삶과 사상」이다. 이미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1·2)와 쑨거의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 『사상이 살아가는 법』 등을 번역해 온 윤여일의 글은 단순히 언어의 번역이 아니라 한국어의 공간 안에서 시도되는 ‘사상의 번역’이다. 그는 이 글에서 전후 일본의 대표적 사상가이면서도 적극적인 해석이 아직 시도되지 않은 츠루미 슌스케의 삶과 사상의 전모를 보여 준다. “다케우치 요시미의 전기인 이 책을 번역하기로 마음먹을 때 내 관심은 다케우치 요시미만큼이나 츠루미 슌스케였다. 다케우치 요시미를 알기 위해서만큼이나 츠루미 슌스케를 이해하고 싶어 츠루미 슌스케의 수많은 책 가운데 고민하다가 이 책을 골랐다. 하나의 정신을 알고자 할 때, 다른 인간에게 어떻게 접근했고 무엇을 중시했는지를 확인한다면 그 정신의 본질을 얼마간 엿볼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라는 말처럼 그는 이 글에서 다케우치와 츠루미라는 전후 일본의 두 사상가가 무엇을 추구했는지를 해명하고 사상을 잇는 작업의 가능성을 구체화한다.

 

그는 츠루미의 삶과 사상을 “사상은 신념과 태도의 복합”라는 츠루미의 관점이 생활의 근거지를 사상의 준거틀로 삼으려는 노력과 ‘반사反射’의 개념으로 포착한다. “반사란 어떤 자극이 주어졌을 때 그 사람이 드러내는 반응이다. …… 일상이란 반사의 영역이고, 여러 반사들로 생활은 두께를 가지며, 반사들의 양상이 삶의 태도를 이루며, 사회적 자아란 외부로의 노출과 자기 고유의 반사 간의 긴장 관계로 성립한다. 츠루미는 이러한 반사의 차원을 사상의 소재所在로 파악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츠루미 슌스케의 사상관은 자신의 전쟁 체험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이러한 츠루미는 전중을, 전후를 어떻게 살아냈던 것일까. 윤여일의 글은 다케우치 요시미 전기 속에 담긴 츠루미 슌스케에 관한 잘 씌어진 ‘소전小傳’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윤여일은 저명한 정치가·지식인의 가문에서 태어난 츠루미가 다케우치 요시미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을 그의 ‘불량소년’ 이력에서부터 추적한다. 그는 전쟁 지지라는 다케우치와 달리 전쟁 반대의 입장을 지니고 있었지만 “전후가 되어서는 말뚝에 매달리듯이 살아가는 방식이 올바른지 의심이 들었고 그(다케우치 요시미)의 저작에 이끌린”다. “다케우치의 문체는 …… 학문에 기대어 평론하며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처신을 걸고 상황을 확실히 움켜쥐려는 자의 스타일이다. 자신이 그 안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까닭에 그의 문장은 안정감이 있다.” 츠루미는 다케우치 요시미의 문장들을 이렇게 읽었다. 우선 다케우치가 루쉰의 문장을 이렇게 읽어 낸 바 있다. 루쉰에 대해 다케우치가 그렇게 했듯, 츠루미 역시 다케우치의 사상의 모습을 같은 태도와 방법으로 읽었다. 그들은 공통되게 “현실 속에 뛰어들어 자기 명제의 내부적 정합성에 구애되지 않고 움직인다. 그렇다고 현실을 그대로 추인하지도 않는다. 주체는 현실 속에서 자신을 씻어내며 부단히 자기를 갱신한다. …… 이로써 주체는 유동성 더불어 주체성을 얻는다. 다케우치 요시미가 말하는 동중정이란, 행동이란 바로 이런 의미이며, 츠루미 슌스케는 이 운동의 생애를 ‘어느 방법’으로 형상화해 냈다”는 역자의 해명은 전중과 전후를 거쳐 오늘의 동아시아 비판적 사상들을 잇는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