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낭만주의 칼 슈미트 지음 / 조효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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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기 전, 청년 칼 슈미트는 자국민들을 향해 이렇게 일갈했다.

 

“독일인들은 쉽고 편한 한마디 말로 어렵지 않게 소통하는 경쾌함이 부족하다.”

 

슈미트가 보기에 당시 독일인들의 언어생활은 바벨의 혼란을 방불케 했다. 때는 바야흐로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사람들은 더 이상 기존의 가치와 질서 들을 신뢰할 수 없었다. 절망과 허무의 감정만이 그들을 지탱했다. 삶의 의미가 제 빛을 잃으며 온갖 어지러운 말들이 난무했다. 난분분한 말들이 무성한 갈등을 꽃피우자, 허무주의는 더 깊이 사람들의 영혼에 뿌리내렸다. 이 혼돈의 땅에서 청년 슈미트는 문제의 뿌리를 찾아 근절하려는 작업에 착수한다. 『정치적 낭만주의』는 바로 그 작업의 결과다. 슈미트는 ‘19세기 정치적 낭만주의자들이 무책임하게 뿌려 댄 무질서의 씨앗이 무성하게 자라 오늘날 수많은 갈등과 혼란을 유발했다.’고 진단한다. 그에 따르면, 이 씨앗의 다른 이름은 ‘주관적 기연주의’다. 바로 자아 비대증과 기회주의의 절묘한 결합이라는 것이다. 주관적 기연주의의 응용 확장판인 ‘정치적 낭만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해, 슈미트는 현 세계 기형성의 한 원인을 소상히 밝혀낸다. 이 책은 정치 풍자와 역사 비평의 모범적인 결합을 보여 주며, 오늘날 우리 정치 현실을 이해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것이다.

민주주의가 낭만에 취한 시대,

청년 칼 슈미트의 통렬한 비판을 다시 읽는다

 

 

오늘날의 한국을 생각해 보자. 교회는 불법 정치 집회로, 정치 집단은 종교의 모습으로, 정치는 개인 방송의 불쏘시개로, 종교는 갖은 음모론의 출처로 소비되고 마는 현실을. 너도나도 “진짜”를 자처하는 모습은 애석하게도 “진짜”가 드문 시대임을 방증한다. “진짜”의 빈자리를 슬몃 차지한 숭앙과 혐오는, 동전의 양면으로 들붙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사잇길로 굴러다닌다.

 

여기, 작금의 사태를 미리 내다본 사람이 있다. 『정치적 낭만주의』의 저자, 칼 슈미트는 “교회가 극장으로 대체되고, 종교적인 것이 연극이나 오페라의 소재 따위로 취급되며, 성당이 마치 박물관처럼 여겨지던 당시 세태”를 아프게 꼬집는다. 무려 100년 전의 진단이다. 어째서 이 오래된 진단에서 21세기 한국의 오늘이 보이는 걸까. 만약 슈미트가 오늘날 한국인들의 소통 양태를 본다면, 과연 무어라 말을 할까. 아마도 그는 이렇게 탄식하지 않았을까?

 

‘한국인들은 쉽고 편한 몇 마디 말로 가볍게 서로의 인격을 짓밟아 버린다. 그래서 그들은 가장 중요한 문제, 즉 정치를 수렁에 빠뜨리고 있다.’

 

매일 매순간 우리는 목격한다. 미문이 비판을 밀어내고, 미사여구가 촌철살인을 지워내며, 감정적 편 가르기가 합리적 판단의 숨통을 조이는 장면들을. 슈미트가 100년 전 유럽을 묘사한 문장은 오늘의 한국, 나아가 세계 전체에 실로 적확하게 들어와 꽂힌다.

 

“이 세계는 실체 없는 세계, 확고한 지도 체계가 부재한 세계, 결론도 정의도 결정도 최종 판결도 모른 채 우연이라는 마법의 손길에 이끌려 끝없이 방황하는 세계다.”

 

『정치적 낭만주의』는 이제 막 법학자로서 활동을 개시한 슈미트가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은 본격 정치·역사 비평서다. 그가 이 책을 구상하고 집필한 것은 제1차 세계 대전의 참상과 부조리를 온몸으로 겪어 낸 직후였다. 다다이즘을 대표하는 시인 후고 발Hugo Ball은 『정치적 낭만주의』를 두고 “칼 슈미트 사상의 『순수이성비판』에 해당하는 책”이라고 말했다(발에 따르면, 1922년의 『정치신학』은 『실천이성비판』이다). 첫 책에서부터 슈미트는 이미 정치사상가로서의 예리한 안목과 문화비평가로서의 날카로운 필봉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독일 정신사 및 정치신학의 달력상, 이 책은 칼 바르트의 역작 『로마서』 초판과 동년배라 할 수 있다. 비록 바르트의 책만큼 열띤 반응을 얻지는 못 했지만, 『정치적 낭만주의』가 내보인 정치 비판의 가공할 위력은 『로마서』─초판과 재판을 아우르는─가 보여준 종교 비판의 힘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칼 슈미트의 『정치적 낭만주의』는 가짜 뉴스와 주작이 판치는 시대, 질 낮은 아류들이 횡행하는 이 시대가 반드시 참조해야 할 필독서다. 현 시대에 미만한 생존주의와 각자도생 문화, 무엇보다 도무지 끝을 모르는 ‘칭찬 제일주의’에 염증을 느끼는 모든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