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물결 페미니즘 

정동적 시간성    프루던스 체임벌린 지음  / 김은주· 강은교· 김상애·허주영 옮김

 

제4물결 페미니즘 표1.jpg

2011년 시작되어 북미 주요 도시와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등 세계 60개 도시와 한국을 가로지 페미니즘의 도도한 흐름은 어느 때부턴가 ‘제4물결 페미니즘’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확산되어 순식간에 연결-행동으로 이어지는 동시대 페미니즘의 의미와 역동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인식의 토대는 빈곤했다. 그러는 사이 페미니즘의 통로로 생각되던 온라인 공간은 페미니즘에 대한 거친 반격(backlash)의 장이 되기도 하면서 상황은 한층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영국의 페미니스트이자 영문학자인 프루던스 체임벌린의 『페미니즘 제4물결: 정동적 시간성』은 바로 이 같은 복잡하고 혼재된 오늘의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책이다. 페미니즘이 자기의 역사를 규정해온 ‘물결 서사’의 한계를 검토하고 새로운 인식의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온라인을 매개로 급등하는 행동주의의 동학을 분석하고, 나아가 페미니즘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검토되어야 할 지점들을 제시하는 일까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인식의 실마리들을 제공해 준다.

 

확실성의 기표나 선형적 시간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우연성이 운동을 추동하는 오늘의 물결은 구체적인 맥락에 페미니즘이 응답함으로써 만들어지기 때문에, 페미니즘의 내적, 외적 맥락이 바뀌면 물결도 기세를 얻거나 잃을 수 있다. 제4물결이 단지 페미니즘의 나르시시즘으로 전락하지 않고 모순된 사회를 변화시키는 역동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인식적 노력이 요청되는가. 독단과 분리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대화의 장을 열고, 인종과 트랜스 쟁점을 포함한 사회적 정치적 맥락과의 교차성을 확보하며 변화의 파고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어쩌면 페미니즘이 자신의 역사를 설명하는 방식부터 전환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고민과 모색, 대화의 시작에 놓여 있다.

페미니즘, 역사를 설명하는 방식을 바꾸다

 

페미니즘이 역사를 말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역사는 단지 과거에 대한 기억일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기대와 관련을 맺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설명은 역사 그 자체를 형성하고 구조화한다. ‘물결’ 은유가 갖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은 자신의 역사를 ‘물결 서사’로 기록하고 설명해 왔다. 여성 참정권을 위해 싸웠던 제1물결, ‘여성성의 신화’를 깨고자 했던 제2물결, 페미니즘의 시간성을 퀴어링하고자 했던 제3물결, 그리고 오늘 세계의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행동주의의 파고를 이어가는 제4물결까지. 그러나 선형적 시간성에 기대거나 연대기적 서술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지금까지의 물결 서사는 온라인 공간을 매개로 확산되고 즉각적으로 행동주의로 이어지는 제4물결에 이르러 결정적으로 한계에 봉착했다. 세대와 확고한 정체성을 중심으로 이전 물결과의 차이와 단절을 강조하고, 페미니즘 명사들로 대표되던 그간의 서사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못했던 모순들이 동시적으로 문제시되고 일상의 차별과 폭력을 참지 못하게 된 여성들이 불시의 사건을 계기로 연결되고 익명의 대중운동으로 폭발하는 현실의 역동성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연성이 물결을 추동하며, 이미 지나간 것이라고 여겨진 과거의 물결들이 동시대의 물결과 더불어 급등하는 현실은 페미니즘이 역사를 설명하는 방식에 전면 전환을 요구한다.

 

프루던스 체임벌린의 책 『페미니즘 제4물결: 정동적 시간성』 은 이러한 동시대적 요청에 대한 응답이자, 페미니즘의 시간성에 대한 인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저자는 ‘물결 서사’를 이제는 던져버려야 할 유물로 기각하지 않고, ‘정동적 시간성’이라는 접근법을 지렛대로 인식의 새로운 생산적 가능성을 탐문한다. 실상 물결 은유는 무심히 받아들이는 것 이상으로 단절이나 분리와는 거리가 있으며, 확실성의 기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역류와 회오리를 포함한 잠재적 복잡성을 내포한다. 물결은 넓은 바다의 일부이며, 시간의 순서대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여도 시간성들의 교차를 가로막지 않는다. 물결은 연결되며 끊임없이 움직인다. 물결의 움직임이 만드는 동요와 파장은 그렇지 않았더라면 눈에 띄지 않았을 저류를 표면화하면서 수면에 의해 유지되는 고요함을 뚫고 나오는 운동이다. 가부장제에 뿌리를 둔 여성 혐오와 강간 문화가 낳은 불시의 사건에 촉발된 분노와 슬픔의 정동이 온라인을 통해 순식간에 확산되고 행동주의와 연결되면서 출렁이고 솟구치는 동시대 페미니즘의 현장은 선형적 진보 서사로는 더 이상 포착되지도 이해되지도 않는다. 오늘날 행동주의의 급등을 이끄는 것은 페미니즘 이념이나 장기적 목표 같은 지표가 아니라 사람들의 내면을 특정한 형태의 공적 느낌을 만들어 ‘끈적하게’ 연결하며 정치적 주체들로 한데 묶는 정동이며, 이 정동이 시간을 관통해 생성하는 이행이 독단이나 정확성을 즉시 요청하지 않고도 페미니즘 물결을 출현시킨다. 사적 감정과 공적 감정, 외밀성과 내밀성을 매개하고, 힘과 통로를 창출하는 정동은 고정성의 욕구에 저항하며 ‘되기(becoming)’의 과정을 지속한다. 그것은 행동의 급등(출렁임과 솟구침)이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이동하는 ‘경계 공간(liminal space)’이며, 여기서 과거, 현재, 미래는 동시대 행동주의의 순간 속에서 서로 닿는다.

 

 

‘정동적 시간성’을 가로지르는 사건과 현장들

 

저자는 시간에 대한 선형적 이해로 페미니즘을 납작하게 만들면 정치의 다양성과 다중성이 삭제된다고 말한다. 정동의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긍정하면서, ‘정동적 시간성’을 통해 동시대 페미니즘의 현장에서 다양한 유형과 성격의 정치를 위한 가능성을 열자고 제안한다. 그러면서 제4물결 페미니즘의 초기 몇 년이 다양한 느낌의 강도를 통해 어떤 실천들을 만들어 왔는지 접근을 시도한다.

 

비록 저자가 예시로 드는 다섯 가지의 행동주의 사례들은 영국에서의 제4물결 운동에 해당되지만,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페미니즘 제4물결의 특성은 세부적 차이를 감안한다면 그대로 한국의 동시대 페미니즘 현장과도 겹치는 것들이다. 먼저, 첫 번째로 2011년 캐나다에서 시작되어 몇 달 안에 영국에서도 일어난 슬럿 워크(Slut Walk) 시위이다. 이는 한국에서도 같은 이름과 성격의 시위가 이어졌는데, 이는 매우 작고 국지적인 사건도 이제는 몇 주 만에 전 세계적인 시위가 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 준다. 디지털 기술이 가능케 한 속도는 즉시성과 신속성, 응답성의 감각으로 이들 서로 다른 공간에서 벌어지는 시위들이 서로를 반영하게 한다. 1960년대 제2물결의 현장에서 나온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는 제4물결에서 반복되며 갱신된다. 공공장소에서 일어나지만 개인적인 체험에 위치했던 흔한 길거리 성희롱 경험은 이제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정치화되면서 개인적인 경험이 세상과 맺는 방법을 바꾸어 놓는다. ‘피해자 탓하기’라는 교활한 문화에서 내뱉어진 ‘슬럿’이란 단어를 차용하는 언어 전략은 피해자를 초래하는 특정한 형식이 있음을 지시하는 기표를 해체하면서 시위 현장으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이끄는 효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설명은 여기서 그칠 수 없다. 제4물결과 관련하여, “왜, 이 순간에 행동주의가 급등하는가?”라는 질문이 제시된다. 슬럿 워크는 분노와 격분으로 태어났지만, 이 정동들에는 ‘진보’를 시간성의 척도로 여겨 오던 믿음에 대한 불신과 여성에 대한 공공서비스의 급격한 감소를 가져온 신자유주의적 사회 변화와 조건이라는 외적 맥락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입법적 진전에도 불구하고 줄어들지 않는 강간 문화에 대한 분노와 불신, 여성을 위한 공공서비스가 사라지고 가정 폭력이 오히려 느는 사회 변화가 정동의 강도(에너지와 힘)를 급격히 높이게 되는 것이다.

 

이어서 저자는 ‘일상 속의 성차별’이란 이름의 영국에서의 아카이빙 실천이 동시대 페미니즘 실천에서 어떤 정치적 기능을 수행하는지를 검토한다. 트위터 계정과 웹사이트인 ‘일상 속의 성차별’은 ‘매일매일’ 발생하는 ‘사소한 사건들’로 인식되고 익숙해져 더 이상 그것을 성차별로 인식하지 않는 사례들이 모이고 보관되는 아카이빙 실험이다. 그것은 구체적인 운동이나 캠페인을 대표하는 부분들을 수집하여 역사적 시간의 정보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쓰기가 불가능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겪는 경험의 현재적 순간의 기록이다. 거리에서의 가벼운 성희롱도 가부장제의 존속에 일정한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페미니즘이 일정한 평등을 달성했기 때문에 노골적인 여성 혐오가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포스트페미니즘적 경향 아래 여성 스스로 의도적인 ‘잊어버리기’로 공모함으로써 수치의 감정 아래 묻힌 경험들이 한곳에 모이기 시작하는 것은 행동주의와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가. 경험의 위계를 만들지 않고 다양한 목소리들을 우선시하는 새로운 아카이빙 실천은 우선 광범위한 여성들의 경험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고, 그렇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사람들의 관점 변화를 가져온다. 여기서는 분량이 내용만큼이나 중요하며, 이러한 집단 기억의 기록과 문서화는 페미니스트 행동주의의 급등에 확실히 기여하는 시도로서 그 순간에 만들어진다(‘일상 속의 성차별’에는 두 달도 안 되어서 1천 개가 넘는 트윗이 등록되었으며, 이 웹사이트는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는 분명 즉시성, 응답성 및 온라인의 신속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러한 특성으로 기세의 감각을 발생시킬 뿐만 아니라 공유와 연대의 감각을 만들면서 행동의 급등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이렇듯 제4물결의 순간은 기술의 발달을 기반으로 아카이브 실천을 혁신하며 새로운 방식의 트라우마적 경험의 분출과 결합되는 것이다.

 

한편 제4물결 운동의 또 하나의 사례인 ‘페이스북 강간 문화 고발 캠페인’은 의심의 여지없이 페미니즘과 소셜 미디어 운동이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받지만, 동시에 페미니즘이 자본주의, 즉 신자유주의와 맺는 복잡한 관계를 드러낸다. “[우리는] 혐오 발언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

지한 발언과 유머러스한 발언을 구별한다”는 페이스북 모호한 규칙 아래 여성 혐오와 폭력이 ‘유머러스한’ 것으로 자리 잡는 동안 여성 혐오와 폭력에 공모하는 무리들은 여성들이 유린되거나 학대당하는 사진과 함께 노골적인 이미지들을 올렸고, 이에 분개한 페미니스트들은 페이스북에 해당 페이지를 고발하는 것과 함께 캠페인 파워를 통해 여러 브랜드가 광고를 철회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러한 임파워먼트는 대가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페미니즘이 저항을 위해 브랜드의 힘을 이용할 때 효력과 생산성이 발생하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기업의 이익에 기여하고 페미니즘 행동주의가 자본이 만들어 내는 불평등과 심각한 사회적 모순에 대응하지 못하는 한계에 봉착할 수 있다. 이는 갈수록 두드러지는 트롤링 문화, 즉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backlash)과 함께 더욱 복잡한 상황이 펼쳐지게 된다. 제4물결은 이에 수반되는 반격과 깊은 관련을 맺는다. 제4물결 속의 반격은 이전 시기의 반격처럼 일정한 성취에 대한 반격이 아니라 페미니즘 행동주의와 거의 동시적으로 발생하며, 제4물결은 페미니스트들과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무리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페미니즘 운동의 에너지를 지탱하는 역설을 포함한다. 영국에서의 ‘10파운드 지폐에 여성의 얼굴 넣기 캠페인’은 소셜 미디어의 힘과 중심성을 입증했지만, 영국은행이 이를 받아들이자 곧장 트롤링이 시작되었고, 캠페인을 주도한 페미니스트들은 신체적 위협에 노출되었다.

 

 

페미니즘이 지속될 미래[들]을 위하여

 

페미니즘의 언어 전략은 정동과 물결의 향배를 결정하는 시험대이다. 페미니즘이 급진적으로 세계를 변형하는 힘을 잃지 않기 위해 지배 문화에 불편한 태도를 유지함과 동시에 ‘유머(스러움)’를 발휘하여 폭넓은 대중에게 어필하고 공감을 넓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슬럿’이나 ‘퀴어’의 경우는 단어를 전복하고 비꼼을 통해 전유하여 부정성을 긍정성으로 뒤바꾼 성공적인 사례지만, 아이러니 효과를 유발하고자 했던 어떤 언어는 발화자를 위험에 몰아넣기도 한다. 저자가 다섯 번째로 든 사례가 그것인데, 명성 있는 여배우 에마 톰슨이 2016년 오스카 시상식에서 심사를 주도하는 “늙은 백인 남성”을 모두 죽일 수 있다면 다양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을 때는 반격이 없었지만, 유색인 여성 아마바하르 무스타파와 해시태그 ‘#모든백인남성을죽이자’를 포함한 그녀의 트윗은 ‘역인종차별적’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비난을 받고 혐오 발언을 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 사례는 ‘백인‐비장애‐중산층 여성’들과 달리 여전히 어떤 신체들은 페미니즘 대열 내에서 더 큰 위험에 처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인종적 차이를 넘지 못한 미국의 슬럿 워크와 더불어 교차성과 평등에 대한 동시대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결핍과 부재는 여전히 남아 있다.

 

체임벌린의 책은 동시대 제4물결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있지만, 그것이 열어갈 미래들에 대해 섣불리 예측하지 않는다. 물결의 불확실성과 모호성을 그 자체로 긍정하면서 정동의 흐름에 따라 변형되는 이 ‘되기(becoming)의 과정’이 노정하는 결여의 지점까지를 응시한다. 인터넷은 제4물결에서 중심을 차지하며, 속도, 즉각성, 신속성을 가능하게 하고 이 모든 것을 융합하며 활동가들 사이에 퍼져 나가는 정동에 기여하지만, 초기의 기대와 달리 페미니스트들의 유토피아적 공간으로 남이 있지 않다. 상당한 경우 인터넷은 오프라인 현실의 사회적 역학을 복제하고, 익명성은 물질적 세계에서보다 더 많은 곤경을 쉽게 만들어 내는 무책임한 문화를 가능하게 했다. 제4물결을 이끄는 캠페인은 공적 상상력을 사로잡아 온라인에서 거대한 지원을 얻기도 하지만, 더 많은 캠페인들은 같은 수준의 열광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이내 사라진다. 제4물결 페미니즘은 새로운 청원이나 해시태그에 변함없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붓는 사람들로 광대하게 인식될 수 있지만, 행동주의가 인터넷에서 존재한다고 해서 언제나 현실의 변화가 뒤따르지는 않는다. 이 행동주의가 물질적 변화로 바뀌지 않는다면, 인터넷에서의 행동주의와 인터넷 바깥의 현실 속 여성 경험 사이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정동과 페미니즘 물결은 강도의 급등이 끊임없이 변화하며, 그 강도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을 때 사라진다. 이 사라짐은 반드시 실패를 의미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미래를 향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미래로 향함으로써 행동주의가 펼쳐지는 순간과 그 순간에서 이어지는 페미니즘의 열망 사이에 대화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때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교차성’의 문제이며, 특히 그중에서도 페미니즘 정치 내부에 갈등과 곤경을 발생시키는 인종 문제와 퀴어/트랜스 페미니즘에 주목한다. 이는 인종주의(에 기댄 인종 정치)가 득세하는 미국과 영국을 반영하고 있지만, 어떤 곤경은 한국의 동시대 페미니즘 내부에도 존재한다. 이 쟁점들은 시간에 대해 무엇을 시사할 것이며, 페미니즘의 미래에 무엇을 요구하는가. 차이와 갈등의 요소들은 내부 비판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는 데 유용할 수 있지만, 물결의 정동적 시간성이라는 기세를 가로막는 강력한 분리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물결의 정동적 시간성은 그것이 응답하는 사회에 의해 구성된다는 사실은 늘 환기될 필요가 있다[낡은 체제를 변혁하려는 거대한 물결인 1968년 운동과 베트남전 반대와 페미니즘의 분기가 상호 연관과 분별에 대한 변증법적 사유를 요구했듯이]. 저자는 독단과 분리가 아니라, 인종과 트랜스 쟁점을 포함한 사회적 정치적 맥락과의 교차성을 확보하며 변화의 파고를 이어갈 수 있는 길을 함께 찾아가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고민과 모색, 대화의 시작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