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의 『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자본』의 첫머리에 대한 독해 안내와 주해   미하엘 하인리히 지음 / 김원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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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1960년대 말 이래 서독에서 이른바 ‘새로운 맑스-독해’ 경향이란 것이 출현한다. 유럽에서의 학생운동의 폭발과 더불어 시작된 이 흐름은 그러나 1970/80년대 ‘맑스주의의 위기’를 거쳐 1989/90년의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로 “종말”을 맞이하는 듯했으나, 지구적 자본주의체제의 모순이 드러나는 1990년대 말 이전보다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이번에 한국어로 번역된 『맑스의『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자본』의 첫머리에 대한 독해 안내와 주해』라는 긴 제목의 책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맑스 독해’의 흐름을 한 차원 발전시킨 대표적 학자로 평가받는 미하엘 하인리히의 본격 『자본』 주해서로 바로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가 막 시작되려는 시점에 출간되어 판을 거듭하며 폭넓게 읽히고 있는 책이다.

 

저자인 하인리히는 처음부터 『자본』이라는 텍스트 자체에 대한 철저한 독해 외에 다른 우회로는 없다고 말한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이전 저작인 『정치경제학 비판 개론』(2004. 한국어로 『새로운 자본 읽기』로 출간되었다)도 스스로의 『자본』 읽기를 대체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책은 부제 그대로, 『자본』의 첫머리―1권 1장과 2장 전체를 한 구절씩 떼어내어 설명해 가는 지금까지의 어떤 해설서보다 상세한 독해 안내이자, 맑스 자신이 『자본』에서는 짧게 다루었지만 다른 글에서 더 다룬 부분들을 찾아내어 그 또한 해석해 내는 치밀한 주해서이다. 이 책의 장점은 물론 이러한 상세함과 치밀함이 아니라 ‘주해의 방식’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저자의 주해는 지금까지의 『자본』 독해의 문제들과 치열한 긴장 속에서 전개되며, 독자 자신이 이러저러한 사전 지식이나 ‘권위자’의 해설에 의존하지 않고, 한 구절씩 독서의 과정을 전개할 때 생겨나는 질문들과 대결하도록 이끌며, 그를 통해 독자 스스로 맑스의 논증과 상이한 추상 지평들, 증명 방법들을 조사하고 비판적으로 재구성해 내도록 도움으로써 『자본』의 시작인 ‘가치론’의 핵심에 다가서게 한다. 맑스의 이 가치론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실체를 규명한 과학혁명의 결정(結晶)이며, ‘새로운 맑스 독해’란 결국 『자본』의 과학을 오늘 우리 자신의 과학으로 ‘비판적으로’ 재구성해 내려는 시도에 다름 아닐 것이다. 『자본』과 처음 만나는 사람뿐 아니라, 이미 공부하여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나아가 전공자에게도 『자본』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논쟁의 계기를 제공해 줄 것이라 기대한다.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 사태로 증명된 ‘생태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왜 150년도 더 지난 맑스의 『자본』을 읽어야 하는가?

 

 

2008년 금융위기 이래로 (적어도 자본주의의 본산인 서구에서는) 맑스의 이론이 다시 주목을 받아 왔고, 이와 더불어 『자본』 읽기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그것은 이러한 위기가 자본주의 외부의 쇼크가 아니라 바로 자본주의경제에 내재한 위기였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 때문일 것이다. 이 무렵 한국 사회에서도 제한적이기는 하나 자본주의체제의 위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이 적잖이 출간되고, 맑스의 『자본』 해설서(혹은 개설서)들이 소개되기도 했다.

 

금융위기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사이 자본주의의 위기 담론은 ‘4차 산업혁명’이란 단어의 등장과 함께 자취를 감추다시피 하고, 현재 거의 전 세계는 코로나 바이러스에서 시작된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Pandemic)’에 의해 지배되면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중이다. 언뜻 보아 이것은 자본주의적 가치증식 과정들과 관련이 없는 외부의 쇼크처럼 보이는 까닭에 코로나 확산으로 너나없이 고통을 당하면서도 이러한 고통이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에 대한 관심으로는 좀처럼 연결되지 않는다.

 

이번에 한국어로 번역되어 선보이는『맑스의『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자본』의 첫머리에 대한 독해 안내와 주해』라는 긴 제목의 책의 저자 미하엘 하인리히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바로 이러한 인식이 문제이며 안이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건넨다. 오늘의 생태 위기에서 비롯된 팬데믹 현상은 다름 아닌 단종재배에 근거한 자본주의적 농업의 구조가 생물의 다양성을 파괴하고 동물종을 파괴시킴으로써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결국 인간들로 바이러스들이 전염되는 것 또한 인류사의 이전 어느 시기보다 훨씬 더 간단하고 훨씬 더 자주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여기에 대응해야 할 의료체제는 신자유주의적 긴축 정책의 첫 번째 타깃이 되어 왔다. 그러므로 2008년처럼 작금의 위기 또한 지배적인 자본주의적 경제체제를 가리키고 있는 셈이 된다. 전례 없는 재앙의 연쇄 앞에서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제 개발 못지않게 스스로 멈출 수 없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법칙들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 긴급한 과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체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고자 하는 누구라도 맑스의 『자본』을 비켜갈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왜 『자본』을 요점 정리식의 누군가의 렌즈를 통한 개론서가 아니라 『자본』 자체를 읽어야 하는가?

 

맑스의 『자본』이 세상에 나온 지는 150년도 더 지났다. ‘혁명’의 20세기 초중반을 지나 맑스주의를 체현했다는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이 문제를 드러내는 과정에서도 자본주의 서구 국가들에서 폭발한 학생운동은 『자본』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이때 등장한 맑스 열풍은 ‘새로운 맑스-독해’의 흐름을 만들어 냈는데, 여기서 ‘새로운’이란 수식어는 그때까지의 지배적인 독해 방식(교조든 개량이든)을 극복하려는 의지에 의해 뒷받침된 것이었다. 그러나 한마디로 이러한 흐름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베트남전쟁의 종결과 제3세계 혁명의 열기도 식은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를 지나면서 우파들만이 아니라 좌파들 사이에서도 『자본』이 유효성을 상실했다고 주장하는 ‘맑스주의의 위기’를 거치면서, 마침내는 1989/90년의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함께 최종적으로 맑스주의는 종언을 고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전 지구적 자본주의가 곳곳에서 모순을 드러내면서 맑스주의는 또 다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맑스-독해’가 흐름을 만들어 냈는데, 이때의 흐름은 과거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달랐다. 하나는, 비록 그 강도(强度)에서 1960년대 말에 비해 못 미치지만 정치적 기대가 적은 대신 그릇된 해석의 전제들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며, 둘은 일종의 유행 현상에 그쳤던 과거와 다르게 맑스의 『자본』에 대한 진지한 몰두, 다르게 말해 『자본』에 대한 피상적이지 않은 정확한 이해를 목표로 삼는 흐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주로 독일을 중심으로 생겨난 이 흐름이 자본주의의 물신성에 천착했던 테오도어 아도르노의 영향으로 이야기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이것은 침체되었던 맑스주의 연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혁신하는 동력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책 『맑스의『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자본』의 첫머리에 대한 독해 안내와 주해』가 독일에서 출간된 해가 금융위기가 막 시작된 2008년이라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저자 미하엘 하인리히는 1991년 『가치학(Die Wissenschaft vom Wert)』이란 박사학위논문의 출간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이로써 ‘새로운 맑스-독해’의 흐름을 한 차원 발전시켜온 학자로 평가받는다. 맑스의 『자본』 1권 1장과 2장이 가치론이라고 했을 그가 자본주의의 위기의 심화를 목도하면서 이 자본의 첫머리에 대한 치밀한 주해를 시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을지도 모른다. 『자본』과의 철저한 대결 없이는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것도, 그것을 극복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하인리히는 처음부터 자본주의와 그것의 작동 법칙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이라는 텍스트 자체에 대한 철저한 독해 외에 다른 우회로는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자본』에 대한 온전한 접근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나 우회로가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과거 “맑스-레닌주의”를 공식 이데올로기로 내걸었지만 소수의 전문가 집단을 제외하고는 집중적인 텍스트 토론이 부재한 채 “축약된 교과서”만 존재하던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오늘날까지도 맑스주의의 다양한 조류들이 유포한 그간의 해석들이 실은 맑스의 『자본』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고 실패로 이끈 장애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자본』에 대한 쉽고 간결한 이해를 돕는다고 만들어진 숱한 개설서들까지도. 지금까지 『자본』의 대용물로 생각해 왔던 것들을 일단 옆으로 밀쳐 두고 『자본』이라는 텍스트와 대결해 보는 것은 맑스주의의 쇄신은 물론이고, 오늘날의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필수적인 과제인 것이다.

 

19세기에 쓰인 맑스의 『자본』은 21세기에도 유효한 것인가. 하인리히는 맑스의 서술은 모든 발전된 자본주의에서 만나는 공통적인 것을 목표로 한 것이며, 그것은 어쩌면 오늘의 21세기에 더 잘 맞는 것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그러한 적절성은 『자본』이라는 텍스트 자체를 독해할 때 시험되고 판명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자본을 어떻게 읽고 토론할 것인가

 

『가치학』 출간 이후 미하엘 하인리히는 『정치경제학 비판 개론』(2014)를 펴낸다. 이 책(『새로운 자본 읽기』로 번역되어 있다)은『자본』 전 3권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을 시도한 것인데, 하인리히는 여기서도 가치론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나 그것조차 제대로 된 『자본』읽기를 대체할 수 없다고 선을 긋는다. 『자본』이라는 텍스트 자체에 대한 상세한 몰두를 위한 다른 책이 요구되었던 것이고, 그것이 바로 이번에 번역된 『맑스의『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자본』의 첫머리에 대한 독해 안내와 주해』이다.[1부가 2008년, 2부는 2013년 독일에서 출간되었다.]

 

『자본』은 결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텍스트가 아니다. 특히 『자본』의 첫머리가 그러하다. 어쩌면 1960년대 말에 떠올랐던 ‘새로운 맑스-독해’가 피상적인 이해에 그쳤던 것도, 하인리히의 표현대로, 『자본』 1권의 어딘가에서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상품에 대한 장(章)에 등장하는 추상적 노동, 가치형태 혹은 상품물신주의와 같은 중심 개념들은 곧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의욕적으로 시작한 『자본』 읽기는 여기에서 막혀 좌절을 맛보기 십상이었다. 이는 한국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맑스의 가치론과 화폐론에 대한 ‘편견’이 학계를 비롯하여 독자들에게도 널리 퍼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자본』 읽기는 스스로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좋은 삶’을 가로막고 인간과 자연의 파괴와 결부되어 있는 자본주의의 사회화 방식과 이것의 변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라 했을 때 그러한 편견과 한계는 극복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맑스의 『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자본』의 첫머리에 대한 독해 안내와 주해』는 바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이러한 곤경을 타개하기 위해 집필된 책이다. 저자는 ‘안내의 말’에서 『자본』 첫머리에 대한 독해의 어려움들을 다룬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있어 왔던 주해의 다양한 방식들도 언급되며, 토론과 독서의 계획을 어떻게 세울지도 소상히 제시한다.『자본』 읽기 이전에 제기될 수 있는 질문들에 답하고 자신의 이 주해서를 어떻게 이용할지에 대해서도 알려 준다. 여기서 우리는 『자본』을 읽기도 전에 마음을 짓눌러 왔던 의문들―『자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헤겔의 변증법과 포이어바흐를 먼저 공부해야 한다거나, 맑스의 다른 저작들을 미리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등―이 과도한 요구이거나 불필요한 것이었으며, 그러한 ‘맑스-지식’들이 『자본』에 존재하는 논증들은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으며 이러한 우회로 없이 곧장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고, 또 그것이 바람직하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목차 구성의 촘촘함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책은 『자본』의 첫머리인 1권 1장과 2장을 원전의 구절들(파란색으로 구분)과 설명, 주해를 덧붙이며 전개된다. 저자는 독자가 아직 읽지 않은 『자본』 전 3권의 세부 내용과 미리 구체적으로 연결 지으면서 ‘선생티를 내면서’ 주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 첫머리의 구절들을 한 구절씩 끊어서 설명하고, 원문을 읽을 때 생기는 질문들을 다룬다. 주해의 범위를 ‘독자가 그때까지 읽은 텍스트 분량’을 넘어서지 않도록 제한함으로써 독자가 주해의 타당성을 직접 판단할 수 있도록 한다. 말하자면, 이 주해서를 통해 독자는 미리 주어진 지도를 가지고 숲을 탐험하기보다는 직접 숲을 탐험하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의 도움을 받는 식으로 『자본』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독자에게 거침없는 질문, 자유로운 토론, 엄격한 논증의 문을 활짝 열어 둠으로써 『자본』 그 자체의 텍스트에 근거해서―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토대이자 『자본』 이해의 핵심인―‘가치론’과 씨름할 수 있게 돕는다.

 

다른 사람들이 제공하는 실제적 혹은 허위적 지식에 의지함으로써 정작 『자본』이라는 텍스트를 뒷전으로 미뤄 두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를 지향하고 『자본』의 논증을 독해 과정에서 되돌아와서 스스로 정확한 논증을 요구하는 독해가 결국 『자본』을 습득하는 최고의 방법인 것이다. 『자본』은 전 3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따라서 『자본』의 첫머리에 대한 독해로 완전히 이해될 수는 없다. 우리는 여기에서부터 제대로 시작해야 하며, 이 시작을 철저히 해내기 위해 저자는 『자본』이라는 복합적 텍스트의 온전한 이해를 위해 『자본』에서 길게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다른 텍스트에서 더 다루어진 해당 구절들에 대한 주해를 부록으로 덧붙였다. 나아가 『자본』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주요 용어들과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관련 저작들을 『자본』을 중심으로 한 맑스 이론의 통일적인 연관성에서 설명하는 부록도 제공한다.

 

맑스의 텍스트에 대한 엄밀하고 정직한 새로운 독해와 탈신비화, 맑스가 염두에 둔 문헌과 당시 상황에 대한 해박한 지식, 논증의 빈틈없는 철저함 등으로 인해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맑스 전문가’로 평가받는 미하일 하인리히의 이 책이 『자본』과 처음 만나는 사람뿐 아니라, 이미 공부하고 있거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더 나아가 전공자에게도 『자본』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논쟁을 위한 계기를 제공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